2023년 3월 국제금융가에 은행 부도 공포가 유행병처럼 번졌다. 미국 16위권인 실리콘밸리은행(SVB)과 뉴욕의 시그니처은행이 파산했고 167년 전통의 스위스 크레디스위스(CS)도 문을 닫았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꼽히는 미 국채가 도화선이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초긴축 조치로 미 국채 가격이 급락(금리 급등)하는 바람에 은행들의 손실이 급격히 불어났다. 막대한 국채를 떠안은 은행들이 급기야 예금 인출에 시달렸고 그 불길은 유럽 쪽으로 옮겨갔다. 위기는 간신히 넘겼지만, 미 국채 신뢰에 흠집이 났다.
이번에는 미국과 일본에서 국채 쇼크가 동시에 발생했다. 지난주 10년, 30년짜리 국채 금리가 급등해 연 4.5%, 5%를 넘어섰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재정악화를 이유로 미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한 판에 하원을 통과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감세 법안이 화를 키웠다. 감세안 시행 때 재정적자가 향후 10년간 3조8000억달러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퍼졌다. 일본 장기국채 금리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는데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대규모 재정지출과 감세를 약속했던 탓이 크다.

미·일은 빚 수렁에 빠진 지 오래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36조달러를 넘어섰는데 예산의 16%를 이자상환에 쓴다. 일본도 올해 전체 예산의 24%를 국채 원리금 상환에 충당한다. 정치가 헤픈 씀씀이로 국가부채공포를 키우며 ‘셀 아메리카’(미 자산매각), ‘셀 재팬’을 재촉하는 형국이다. 눈덩이 나랏빚의 고통은 더 커지고 오래 갈 게 틀림없다. 미 헤지펀드 대부 레이 달리오는 “미국이 3년 내 매우 심각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도 위태롭다. 6·3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얼마 전 기본사회공약을 꺼내며 소득·의료·복지 확대를 약속했다. 이 후보는 “나라가 빚을 지면 안 된다는 무식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며 “국민에게 공짜 돈 주면 왜 안 되냐”고 했다. 세기의 포퓰리스트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를 연상케 하는 발상이다. 차베스는 집권 14년 만에 석유 수익을 공짜 교육·의료 등에 퍼부어 나라를 파탄 냈다.
이 후보의 호텔 경제론도 위험한 경제인식이 드러난다. 여행객이 호텔 예약금 10만원을 내면 이 돈이 정육점, 미용실, 식당을 돌고 난 뒤 여행객이 예약을 취소해도 상권에 활력이 생긴다는 게 요지다. 그는 “마을에 들어온 돈은 없지만, 거래가 발생했다. 이게 경제”라고 했다. 현실과는 거리가 멀고 성장의 핵심인 생산과 투자가 빠져 논리적 흠결도 많다. 이 후보는 재정의 승수효과를 설명하는 극단적 예시라며 “이해 못하면 바보고 곡해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몰아세운다. 대표공약 지역 화폐를 봐도 이런 주장은 납득하기 힘들다. 현재 한국의 재정지출 승수는 0.6∼0.7 정도로 추정된다. 100원 지출 때 국내총생산(GDP)을 60∼70원 늘리는 효과가 난다는 뜻이다. 지역 화폐의 경우 반 토막인 0.26∼0.36(2020년 한국개발연구원 분석)에 그친다. 소비 진작 효과가 미미하고 지자체·지역상권별 양극화만 양산한다(2020년 조세재정연구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달라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부채 수준이 다르다. 이 후보는 “우리 국가부채는 (GDP 대비) 50%가 안 되는데, 다른 나라들은 110%가 넘는다”고 했다. 빚이 경제규모를 웃도는 나라는 대부분 기축통화국인데 급하면 돈을 찍어 빚을 갚을 수 있다. 남미 국가들은 90% 수준에 부도가 났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부채비율은 올해 54.5%로 비기축통화국 평균치(54.3%)를 처음 넘어선다.
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후보마다 경제 대통령을 자처하지만, 기축통화국마저 쩔쩔매는 재정난을 걱정하는 이는 없다. 나라 곳간이 바닥나면 국가신인도가 추락하고 자본 유출과 금융·외환위기, 실물경제 붕괴로 이어졌던 게 과거의 경험이다. 포퓰리즘을 감별하는 유권자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