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기하학이 품은 시적 감성과 사유의 공간을 마주하다

기사입력 2025-06-16 20:55:18
기사수정 2025-06-16 20:55:17
+ -
재불작가 고송화·진효석 2인 특별전

고송화 ‘파동’
보는 이 움직임·빛 각도 따라 시각적 파장
파동과 색, 빛과 리듬 어우러진 조형적 詩

진효석 ‘구성’
시작·완결 사이, 감각이 머무는 찰나 조각
시선 흐름 따라 보이지 않던 구조 드러나

작가 고송화는 단색(모노크롬) 화면 위에 집중을 요하는 선을 긋고, 정적인 긴장과 내면의 울림을 담아내는 작업을 해왔다. 곡선 위에 직선을 올려 화면의 흐름과 균형을 조율하던 기존의 방식과 달리 최근에는 기하학적 도형들을 병치해 새로운 조형 질서를 탐색한다.

원, 삼각형, 사각형 등 명확한 형태는 무지개 빛 스펙트럼의 선으로 이루어져 있어 단색 화면 위에 생생한 리듬과 색의 떨림을 더하는데, 더욱 구체화된 시각 경험을 제안한다. 이는 단색화의 동양 미학에 서구 구성주의와 미니멀 아트를 결합한 시도로, 절제된 감성과 시각적 정교함이 공존하는 추상언어로 확장된다.

고송화 ‘파동’ 2

특히 그의 작업에서 주목할 점은 감각의 전이를 유도하는 조형적 깊이다. 화면 위에 흐르는 선들은 단지 시각적 구성에 머무르지 않고, 파동(les ondes)처럼 울려 퍼지는 소리로, 피부에 닿는 촉각으로 다가온다. 탁월한 점은 이 파동이 ‘빛’으로까지 번역된다는 것이다.

작가가 반복적으로 새긴 두툼하고 깊은 선들은 마치 화면에 각인된 시간의 흔적처럼, 보는 이의 움직임과 빛의 각도에 따라 스스로 발광하는 듯한 시각적 파장을 일으킨다. 이는 회화의 표면이 단순한 평면이 아닌, 빛과 감각이 살아서 교차하는 장이자, 한국 단색화의 명상적 전통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진화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읽을 수 있다.

이제 고송화의 화면은 더 이상 고요한 평면이 아닌, 파동과 색, 빛과 리듬이 어우러지는 조형적 시(詩)이자, 감각과 지각이 만나는 새로운 추상공간이다.

고송화 ‘파동’ 1

진효석의 조각은 묵언수행 중이다. 그저 묵묵히 접히고 겹치며 스스로를 열고 닫는다. 색은 말을 아끼고, 선은 멈추지 않는다. 그의 작업은 시작과 완결을 지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이, 감각이 머무는 찰나를 조각한다. 차가운 산업 재료는 손에 닿아 따뜻해지고, 반사된 세계는 조용히 작품 안으로 스며든다.

그곳에서 공간은 다시 태어난다. 낯선 각도로 비틀리고, 시간의 결을 따라 은밀히 흔들린다. 빛은 면을 가르고, 그 면은 또 다른 면을 불러들인다. 보이지 않던 구조가 시선의 흐름을 따라 드러나며, 고요한 긴장 속에서 관객은 어느새 그 공간의 일부가 되고 만다.

작가는 묻는다. 평면과 입체, 안과 밖, 작품과 나 사이의 경계를. 구획된 형상은 없다. 모든 경계는 느슨하고, 모든 형상은 잠정적이다. 진효석의 기하학은 계산이 아니라 감각이며, 구성이라기보다 하나의 여백이다.

진효석 ‘구성’ 1

재료의 물성은 작가의 손을 거쳐 물러지거나 강해지고, 반사된 빛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작품에 새로운 결을 새겨넣는다. 이 조용한 조각들은 관객이 움직일 때 비로소 빛을 낸다. 그 앞에 선 관객은 마치 거울 앞에 선 듯 자신의 위치를 다시 묻게 된다.

작품은 고정된 대상을 넘어 움직임과 감각, 인식의 흐름 속에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 그렇게 그의 작업은 하나의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그의 조형은 감각을 깨우는 미세한 진동이며, 지각 너머를 향한 침묵의 기하학이다.

재불작가 고송화와 진효석의 2인 특별전이 7월5일까지 서울 여의도 아트 살롱 드 아씨 갤러리에서 ‘기하학의 시(The Poetry of Geometry)’라는 문패를 내걸고 관객을 맞는다. 조형언어를 통해 기하 추상이 지닌 시적 감성과 미학적 울림을 마주하는 자리다.

진효석 ‘구성’ 2

기하 추상은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다. 자연을 재현하는 대신, 세계를 이루는 본질적 구조와 형태, 색이 지닌 원초적 에너지와 대면한다. 단순한 선과 면, 반복과 변주의 언어를 통해 감각 너머의 질서와 진실에 다가간다. 단순한 시각적 표현을 넘어 이성과 직관, 질서와 감성이 교차하는 지점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화면 위의 선 하나, 형태 하나는 계산된 구조이자 조용히 울리는 시적 진동이며, 보는 이의 감각을 흔드는 무언의 질문이 된다.

이번 전시는 조형적 사유를 깊이 있게 다루는 두 작가를 통해 기하학이 품은 시적 감성과 사유의 공간을 조명한다. 서로 다른 조형 방식 속에서도 두 작가는 ‘절제’와 ‘울림’이라는 공통된 언어로 만난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