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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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가족 문제 제기는 절제 있게

입력 : 2025-11-20 14:54:13
수정 : 2025-11-20 15: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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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가족을 위협하지 마라.” 미국 영화 ‘분노의 질주 6’에서 주인공이 악당에게 하는 명대사다.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18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딸을 거론하는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에게 발끈해 설전을 벌이는 진풍경은 이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전말은 이렇다.

 

김 의원: 정책실장님, 따님이 전세 살고 계시죠?

 

김 실장: 네.

 

김 의원: 전세금은 누가 모은 것입니까?

 

김 실장: 딸이 저축한 게 있고요, 제가 좀 빌려준 게 있습니다.

 

김 의원: 그러면 실장님은 일명 ‘이 정부가 이야기하는 갭 투자’로 집을 사셨죠?

 

김 실장: 아닙니다. 갭 투자 아닙니다.

 

김 의원: 하하. 전세 꼈죠? 자, 이렇게 다시 여쭤볼게요. 갭 투자 아니시라니깐. 전세 꼈습니까?

 

김 실장: 갭 투자 아니고요, 2000년도에 제가 중도금 다 치러서 한 것입니다.

 

김 의원: 자, 따님은 전세자금 도와주셨든, 아니면 따님이 모았든, 자기 집을 살 수 있는 그래도 ….

 

김 실장: 전세입니다. 보유가 아니고요. 전세 살고 있습니다.

 

김 의원: 전세지, 월세가 아니잖아요.

 

김 실장: 예.

 

김 의원: 그러면 보통 집을 사는 주거 사다리로 전세를 이야기하죠?

 

김 실장: 그런 의미로 가 있는 게 아닙니다.

 

김 의원: 자꾸 부인하지 마세요.

 

김 실장: 아니라니까요. 의원님, 주택을 소유하려고 한 갭(투자)이 아니라니까요.

 

김 의원: 청년들한테는, 지금 따님에게 임대주택 살라고 이야기하고 싶으세요? 왜냐면 이번 정부 예산을 보면….

 

김 실장: 제 가족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하지 마세요.

 

김 의원: (이 정부가) 임대주택 예산을 확보하고 청년 월세는, 하지만 청년 전세가 될 수 있는 정책 대출은 거의 다 잘랐습니다. 예를 들어 보면. 청년 월세는 67% 지원한다고 하는데, 전세자금은 디딤돌·버팀목 대출은 3조(원) 이상 잘라냈습니다. 따님을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내 딸은 전세를 살 수 있어서 든든한 아버지의 마음이 있잖아요. 모든 부모님의 마음은 내 아들, 내 딸도 전세 살아서 집 사는 주거 사다리에 올라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따님을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가족을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국민을 가족처럼 생각한다면 정책 대출을 줄여 놓으면, 그러면 청년들 임대주택 가라는 거에요? 왜 전세를 못 가게 그렇게 막으시냐는 겁니다.

 

김 실장: 의원님 질문하신 만큼 저에게 답변할 시간을 주세요.

 

김 의원:  네?

 

김 실장: 우리 딸을 거명해서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고요, 지금 생애 최초나 청년들을 위한 대출 줄인 것 없습니다. 뭘 줄였습니까?

 

김 의원: 예산 보십시오. 내년 정부예산 보면 버팀목 대출, 디딤돌 대출 3조(원) 인상 삭감한 게 내년 예산안입니다

 

김 실장: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면 수혜액도 주는 것입니다. 이전 정부에서 너무 방만하게 운영한 것을 6·27(주택담보대출 한도 제한을 핵심으로 하는 부동산 대책) 때 정리한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가족을 엮어서 그렇게 하세요!

 

김 의원: 가족을 엮는 게 아니라 역지사지로… 제 말을 엮고 있는 것은 실장이십니다.

 

김 실장: 의원님이 엮었잖아요. 제 딸이 전세 갭 투자한다고 그런 식으로 말씀하셨잖아요! 공직자 아버지 둬서, 평생 눈치 보고 살면서 전세 부족해서 딸에게…. 무슨 갭 투자? 무슨 말씀이세요? 의원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우리 딸이 갭 투자했다고!

 

김 의원: 실장님이 갭 투자하신 거 물어본 거예요.

 

김 실장: 제가 갭 투자 안 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둘 다 사실이 아닌 것을 가지고 왜 그러세요? 갭 투자 안 했어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김 실장의 고성 항변은 여당 원내대표인 김병기 운영위원장의 6차례 제지 후 “여기가 정책실장이 화내는 곳인가”라는 질책을 듣고서야 중단됐다.

 

국민의 대표에게 벌컥 한 김 실장의 처신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근거도 없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가족 문제를 끌고 나온 것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사실 9월 관보에 게재된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공고를 보면 궁금해하는 내용이 나와 있다. 우선 김 실장 딸은 아파트를 보유한 것이 아니라 전세권(3억원)만 있어 소위 전세를 끼고 주택을 사는 전형적인 갭 투자와는 관계가 없다. 김 실장의 사인 간 채권액과 딸의 사인 간 채무액이 1억3000만원으로 동일한 점을 보면 김 실장이 해당 금액을 빌려주는 형태로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김 실장 본인도 아파트 한 채만 배우자와 공동소유하고 있어 무슨 자료로 갭 투자를 했다는 문제를 제기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차라리 보통 사람이 자녀에게 주택 전세금 등을 빌려줄 때 문제가 될 수 있는 채권채무계약의 존재, 이자 상환 여부 등을 묻는 게 나을 뻔했다.

 

김은혜 의원은 20일자 ‘설왕설래’를 통해 ‘가족 문제 제기는 절제 있게’라고 지적하자 그것은 ‘이 정부가 이야기하는 갭 투자’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실장의 ‘딱지’ 매입을 언급했다. 김 의원은 18일 국회 운영위 종료 직전 의사 진행 발언을 통해 ‘이 정부의 갭투자’에 대해 “이재명정부는 집을 산 뒤 실거주 안 하고 세를 주면 갭 투자라고 합니다. 원래 갭투자 용어가 아니지요. 내가 해외에 나가야 하는데, 대출 안 받고 내 돈으로 산 건데 그런 사연 안 봐줍니다. 투기가 아닌데 다 사정이 있는데, 그걸 일괄적으로 갭 투자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정책실장이 총괄하는 이 정부 부동산 정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의 ‘딱지’는 세계은행 파견 전인 2000년 매입한 재건축 조합원 입주권을 통해 현재 거주하는 아파트를 획득한 사례를 말하는 듯하다.

 

갭 투자를 확인하기 위해 전세를 꼈느냐는 질문을 반복한 것은 김 의원이다. 아마도 김 실장 일가가 전세를 낀 갭 투자를 했으면서도 청년층 전세 대출 자금은 삭감했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선명한 대립각을 세우려고 한 것 같다. 결국 ‘이재명정부가 규정한 갭 투자’라는 개념을 갭 투자의 근거로 설명했지만, 이것이 청년 전세 대출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복잡하다. 우리 전통의 전세 제도는 주거 사다리로서뿐만 아니라 1990년대 말 금융위기 시절에는 사회안전망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점에서 김 의원의 청년 전세 지원 강화 취지에 공감한다. 문제는 김 실장에게 자신의 딸처럼 모든 국민의 딸을 생각해달라고 하는 취지였다지만, 그렇게까지 직접 언급할 필요가 있었는지 하는 부분은 우리 모두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유력 인사의 가족 문제가 정치 쟁점화한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 자녀의 병역 비리 의혹은 허위로 판명 났지만, 김건희씨처럼 사실로 드러난 경우도 적지 않다. 가족에 대한 문제 제기를 무조건 정치 공세로 싸잡아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 한국적 상황이다. 다만 문제 제기 시엔 선의의 피해자가 없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가족을 거론할 땐 근거를 제시해 절제 있게 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