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순직을 둘러싼 외압 의혹 사건을 수사해 온 이명현 특별검사팀이 21일 윤석열 전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등 12명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지난 7월 수사 개시 후 142일 만이다. 피의자 신분의 이 전 장관이 주호주 대사로 임명돼 출국까지 한 경위 등 특검팀이 조사해야 할 내용은 아직 남아 있다. 그러나 오는 28일이 특검법상 활동 기간 만료일인 만큼 수사는 사실상 끝났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특검팀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공정한 수사를 하고, 앞으로 재판이 시작되면 공소 유지에 만전을 기할 것을 당부한다.
이 사건은 2023년 7월 해병대 1사단 소속 채 상병이 대민지원 활동 도중 순직한 안타까운 일에서 비롯했다. 해병대 수사단은 채 상병의 사망 원인을 조사한 뒤 직속상관인 임성근 당시 사단장의 무리한 지시가 있었다고 판단해 그를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그런데 보고를 받은 윤 전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며 크게 화를 낸 뒤 임 사단장은 처벌 대상에서 빼는 쪽으로 처리 방향이 바뀌었다는 이른바 ‘VIP 격노설’이 외압 의혹의 핵심이다. 특검팀은 당시 국가안보실 및 국방부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한 끝에 ‘윤 전 대통령이 격분한 것은 사실’이란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소문으로만 떠돌았던 VIP 격노설의 실체를 밝혀낸 것은 특검팀의 최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특검팀은 국방부 측에서 해병대 수사단을 이끌었던 박정훈 대령에게 가한 일련의 보복 조치도 확인했다. 국방부 검찰단이 박 대령에게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과정에서 직권남용과 감금, 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범행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문제점도 없지 않다. 특검팀은 수사 기간 이 전 장관을 비롯해 총 10명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임 전 사단장만 빼고 모두 법원에서 기각됐다. 일명 3대 특검팀 중 내란 특검팀, 김건희 특검팀과 비교해 확연히 높은 영장 기각율이다. 해병 특검팀이 실적을 의식해 무리한 수사를 하고 또 영장 청구를 남발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임 전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을 규명한다며 특검팀이 몇몇 기독교 목사들을 압수수색한 행위는 ‘과잉 수사’를 넘어 ‘종교의 자유 침해’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다. 특검팀에 앞서 해병 순직 사건 수사를 맡았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고의로 수사를 지연시켰다며 공수처 전·현 간부들을 무차별 소환하고 신병 구속까지 시도한 것은 ‘별건 수사’요, ‘보복 수사’ 아닌가.
윤 전 대통령은 특검팀 조사에서 직권남용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재직 시절 기자회견 도중 VIP 격노설에 관한 질문을 받자 “(국방장관에게) ‘왜 인명 사고가 나게 하느냐’고 질책성 당부를 했다”고 답변했던 입장을 계속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격노한 사실은 있으나 그 대상은 인명 사고였다는 주장으로, 윤 전 대통령이 화를 낸 것은 ‘사단장 처벌’ 얘기 때문이었다는 다른 관련자들 진술과 배치된다. 곧 시작될 재판에서 외압 의혹 전모가 명확히 규명됨으로써 채 상병 유족의 슬픔을 달래고 실추된 해병대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길 고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