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반도 기류가 심상치 않다. 북한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며 평화통일의 지향점마저 지우려 하고 있다. 끊어진 철길과 폭파된 연결 도로처럼 한반도 허리에 그어진 분단선은 이제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어간다. 국가 간 대화가 단절될수록 우리는 이념의 장벽 아래 신음하던 ‘사람’의 목소리에 주목해야 한다. 국가가 관계를 끊을 때 사람마저 연결의 끈을 놓는다면 평화의 불씨는 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분단은 재일동포 사회의 삶 깊숙한 곳에도 보이지 않는 경계를 그었다. 대한민국을 지지하는 민단과 북한을 지지하는 조총련은 같은 뿌리를 공유하면서도 반세기 넘게 등을 돌렸다. 고향 선후배도 서로 남남이 되었다. 축제나 장례식조차 따로 치러야 했던 이들에게 분단은 일상의 혈맥마저 끊어놓은 가혹한 형벌이었다.
그 얼어붙은 경계에 균열을 낸 인물이 재일동포 구말모(1935~2022) 선생이다.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식민지의 잔재와 민족 분단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였다. 와세다대를 거쳐 연세대에서 정치학을 연구한 그는 학문적 성취에 안주하지 않고, 현실의 모순에 몸을 던진 ‘행동하는 지성’이었다. 그의 삶에서 전환점은 젊은 시절 겪은 옥고였다. 유신체제 때이던 1971년 연세대 유학 중 간첩 혐의로 기소되어 15년형을 선고받고 10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옥중에서 증오 대신 민족의 비극을 응시하며 ‘왜 우리는 갈라져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졌다. 이 성찰은 훗날 그가 화해의 설계자로 거듭나는 자양분이 되었다.
1981년 출옥 후 다시 일본 땅을 밟았을 때도 분단의 현실은 여전했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이후 수십 년간 재일동포 거주지를 누비며 이념에 가로막힌 이들의 고통을 직접 들었다. 주일 한국대사관 사무관과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현장의 신뢰를 쌓았다. 청년의 열정은 노련한 혜안으로 숙성되었고, 이는 그가 예순아홉의 나이에 동포 사회를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 된 원동력이었다.
구말모는 이 간극을 좁히기에 이념이나 체제의 언어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고 판단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깨어진 관계의 실질적 복원’이었다. 때마침 2004년 도쿄에서 평화통일연합이 출범했는데, 정치적 통일 이전에 동포 사회 내부의 해묵은 불신을 걷어내고, 민단과 조총련이 한데 어우러지는 ‘화해의 광장’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이 단체의 초대 회장을 맡은 그는 반대파들의 비난 속에서도 “우리가 먼저 만나지 못하면 조국의 통일은 공염불에 불과하다”며 묵묵히 다리를 놓았다. 그는 말로 그치지 않고 직접 서로의 집을 방문하고 묵은 감정을 털어내는 ‘정서적 결합’을 실천했다.
그 정점은 2004년 서울에서 열린 평화통일대회였다. 그는 민단과 조총련 인사 등 1,200여 명의 재일동포를 인솔하여 조국을 찾았다. 여기에는 초종교초국가연합의 헌신적인 협력이 큰 동력이 되었다. 수십 년간 서로를 ‘적’이라 부르던 이들이 한 버스에 타고 한 식탁에서 밥을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정치적 이해관계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기적 같은 장면이었다. 이는 민간 차원의 신뢰 구축이 국가 간의 적대감을 녹일 수 있는 유일한 열쇠임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구말모가 주목한 해법은 관계의 회복이었다. 특히 그가 체득한 사상적 자원 중에는 평화통일연합 공동창설자인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제창한 ‘참사랑 운동’과 ‘세계평화의 비전’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원수까지도 내 몸같이 품으라는 초종교적 가르침과 ‘위하여 사는 삶’의 철학은 평화통일연합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창립 정신이었다. 이 비전은 정치적 논리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었던 두 집단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강력한 완충재이자 동력이 되었다. 이념이 사람을 가를 때, 참사랑은 사람을 묶는 유일한 사상적 토대가 된 셈이다.
북한의 적대적 선언으로 남북 관계는 유례없는 빙하기에 접어들었다. 국가 간의 대화가 단절된 지금, 관계를 복원하려 했던 구말모 선생의 평화 실험은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교훈을 준다. 평화는 결코 거창한 담론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오히려 평화는 함께 식탁에 마주 앉아 서로의 멍든 자국을 보듬는 일상적 연대 속에서 비로소 그 생명력을 얻는다. 분단의 틈에 다리를 놓으려 했던 구말모와 그 실천의 토대가 된 종교적 배경은 오늘날 경색된 한반도 현실을 타개하고 진정한 화해의 시대를 여는 소중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