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11일 제12회 ‘법원의 날’(9월13일)을 앞두고 행한 연설에서 “법원이 다른 국가 기관이나 정치권력으로부터 부당한 간섭이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냥 원론적인 발언으로 여겨 지나칠 수도 있겠으나, 여당과 청와대가 사법부를 사납게 몰아치는 현 상황에서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조 대법원장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헌법적 사명을 흔들림 없이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사법부에 주어진 변함없는 책무”라고도 했다. ‘어떠한 어려움’이란 문구에서 임기가 8개월여 남은 조 대법원장의 고뇌가 느껴진다.
현재 대법원은 대법원장 포함 14명인 대법관 정원 중 2자리가 공석이다. 앞서 조 대법원장은 손봉기·김성수 판사의 대법관 임명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김 판사에 대해선 국회에 임명 동의안을 제출하면서도 손 판사는 제청을 반려했다. ‘청와대와 대법원 간에 사전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문제는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는 헌정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이 대통령이 영남 지역에서만 오래 근무한 향판(鄕判)인 손 판사보다 진보 성향의 여성 법관인 김민기 서울고법 판사를 선호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대통령이 이미 대법관 후보자를 점찍은 뒤 ‘이 사람을 제청하라’고 한다면 헌법 104조 2항에 규정된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을 형해화하는 것 아닌가.
대법관 제청은 대법원장이 청와대를 방문해 대통령과 직접 얼굴을 마주한 자리에서 해 온 것이 헌정사의 오랜 관행이다. 이번에 청와대는 조 대법원장이 손 판사의 대법관 임명을 제청하며 대면이 아닌 서면 방식을 취한 점을 문제로 삼았다. 그러자 노경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국회에 출석해 ‘앞서 청와대에 여러 차례 대법원장과 대통령의 만남을 요청했으나, 청와대가 일정을 잡아주지 않았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물론 대통령이 얼마나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지 다들 잘 안다. 그렇더라도 대한민국 국가 서열 1위인 대통령과 3위인 대법원장이 머리를 맞대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대통령이 이미 내정한 대법관 후보자 이름을 들고 오지 않을 거면 아예 만나주지도 않겠다는 의사 표시처럼 보이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여당이자 국회 과반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태도는 더욱 가관이다.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 수장을 겨냥해 ‘조희대씨’, ‘희대의 대법원장’ 등 막말을 퍼붓기 일쑤다. 대법원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등에 증인으로 출석한 전례가 없는데도 민주당 소속 서영교 법사위원장은 “대법원장은 황제가 아니다”라며 조 대법원장을 비난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말로만 삼권분립 운운하며 뒤에선 사법부 독립을 짓밟는 위선이 아닌가. 민주당과 청와대 모두 사법부 권위를 존중하고 대법관 제청 갈등을 조속히 봉합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