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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반과 헝가리 봉기 70주년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오르반 빅토르(63) 전 헝가리 총리는 1963년생이다.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 편을 들었던 헝가리가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소련(현 러시아) 위성국이던 시절이다. 부다페스트의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영국의 명문 옥스퍼드 대학교로 유학까지 갈 정도였으니 공산주의 국가에서 극도로 중시되는 ‘출신 성분’이 제법 좋았던 모양이다. 동서 냉전 종식이 임박한 1980년대 말 동유럽에선 민주화를 요구하는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한때 중부 유럽의 문명국이자 강대국으로 통했던 헝가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르반 빅토르 전 헝가리 총리. 2010년 두 번째 집권 후 16년간 헝가리를 EU 및 나토에서 점점 멀어지는 그릇된 길로 이끌다가 올해 4월 총선에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실각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오르반 빅토르 전 헝가리 총리. 2010년 두 번째 집권 후 16년간 헝가리를 EU 및 나토에서 점점 멀어지는 그릇된 길로 이끌다가 올해 4월 총선에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실각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1989년 6월 부다페스트 중심가에서 너지 임레(1896∼1958) 전 총리의 추모 행사가 열렸다. 너지는 1956년 당시 헝가리 시민들이 공산주의와 소련에 항의하며 들고 일어선 ‘헝가리 봉기’의 상징적 인물이다. “언론, 집회, 종교의 자유와 복수 정당제를 보장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촉진하겠다”며 반공 혐의로 수감 중인 정치범들부터 풀어준 너지의 용기는 참으로 대단했다. 하지만 강력한 소련군의 개입으로 너지의 개혁 정부는 금방 무너졌다. 당국에 붙잡힌 너지는 1958년 사형에 처해졌고, 그의 시신은 장례 절차도 생략한 채 가매장됐다.

 

사후 30여년 만에 비로소 복권된 너지를 기리는 장례식 연단에 26세의 청년 법률가 오르반이 섰다. 그는 “헝가리 공산당은 소련 제국주의와 일당 독재에 맹목적으로 복종함으로써 헝가리 젊은이들의 미래를 강탈했다”며 자유로운 선거 실시와 소련군 철수를 촉구했다. 이를 계기로 일약 유명인이 된 오르반은 피데스당(Fidesz·청년민주동맹)을 창당하고 정계에 입문했다. 1998∼2002년과 2010∼2026년 두 차례에 걸쳐 20년 가까이 헝가리 총리를 지냈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패기는 어디로 갔는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잃고 독재 정책을 펴며 반(反)서방·반유럽연합(EU) 노선으로 일관했다. 소련의 후예인 러시아와 밀착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무슨 형님처럼 떠받들었다. 오르반 집권 기간 헝가리는 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임에도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 편을 들고 되레 우크라이나를 탓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헝가리 봉기 70주년을 맞아 오르반 빅토르 전 헝가리 총리 지지자들이 헝가리 국기를 든 채 다뉴브 강변을 행진하며 머저르 페테르 신임 총리 정부의 개혁 정책에 항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3일(현지시간) 헝가리 봉기 70주년을 맞아 오르반 빅토르 전 헝가리 총리 지지자들이 헝가리 국기를 든 채 다뉴브 강변을 행진하며 머저르 페테르 신임 총리 정부의 개혁 정책에 항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3일 부다페스트에서 헝가리 봉기 70주년 기념식이 성대하게 개최됐다. 올해 4월 오르반의 피데스당이 총선에서 참패하고 티서당(Tisza·존중과자유)이 집권한 뒤 처음 열린 봉기 관련 행사였다. 머저르 페테르(45) 신임 헝가리 총리는 오르반을 겨냥한 듯 “1956년 (봉기) 이후에도 침략자들을 옹호하거나 헝가리 국민을 외국 세력의 이익에 복종시키려 한 자들은 1956년의 교훈을 저버린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헝가리는 EU와 나토 회원국으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서방에 속해 있다”고 강조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역시 머저르 총리 취임 후 “헝가리에 민주주의가 부활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헝가리 역사상 최장수 총리의 기록을 세운 오르반의 남은 인생이 평탄할 것 같진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