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프랑스 시위는 OOO 탓이다.”
프랑스 시위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도 프랑스 전역에서 경찰 당국 추산 40만명이 참석한 시위가 열렸습니다.
폭력 사태도 이어졌습니다. 비록 리모주 시청사가 불에 타거나 프랑스를 상징하는 마리안느 동상이 훼손되는 극단적인 일까지는 벌어지진 않았지만, 여전히 최루가스와 화염병이 오가는 격렬한 상황이 이어졌죠.
수 많은 사람들은 이번 프랑스 시위의 원인보다 폭력 사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이번 시위는 ‘시위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흔치 않을 만큼 격렬합니다. 또한 수 십만명이 거리에 나설 정도로 대규모인 데다가, 시위의 양상도 일관되게 흘러가지 않는 듯한 느낌도 있죠.
지난 편에선 프랑스 시위의 원인 즉, 프랑스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해 짚었습니다. 이번에는 프랑스 청년들의 분노를 이용하려는 세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양극화’ 된 프랑스 청년들의 정치 성향
프랑스 매체 르몽드는 17일(현지시간) 전국적인 시위 과정에서 상점이 약탈되거나 경찰과 충돌하는 사진과 영상이 틱톡 등 SNS에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한 같은 폭력 행위를 두고 프랑스 정치계에선 저마다 다른 원인을 지목했다고 전했습니다.
오늘날 프랑스의 정치는 크게 극우, 중도, 극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현 대통령인 에마뉘엘 마크롱이 소속된 여당 르네상스(RE)가 중도 정당에 속합니다. 그 다음으론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마린 르펜의 국민연합(RN)이 극우로 분류되죠. 마지막으로 장뤼크 멜랑숑이 이끄는 불복하는프랑스(LFI)가 극좌에 해당됩니다.
그러면 이번 시위의 주도적인 계층인 청년들의 정치 성향은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프랑스 여론조사업체 오피니언웨이가 이달 프랑스 성인 10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18~24세 청년층에서 지지를 받는 정당은 LFI 등 극좌 정당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RN의 극우정당의 지지도는 26%, 중도 정당의 지지도는 18%에 불과했죠.
이 결과 하나로 보면 이번 시위는 극좌 및 급진좌파 성향이 더 우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현 마크롱 정부도 지난 17일 시위 폭력 사태의 배후에 LFI 세력이 있다고 대놓고 지목했죠. 세바스티엥 르코르뉘 총리도 일부 지역에서 극좌 세력이 “반란적 행동을 계획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프랑스 청년들이 모두 극좌 성향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25~34세 청년의 정당 지지도는 극우 정당이 35%로 가장 높았습니다. 극좌 정당의 지지는 24%로 나타났고, 현 정부인 중도 정당의 지지율은 12%로 전 세대에서 가장 낮았습니다.
25~34세 청년의 낮은 여당 지지 현상은 이들이 막 경제활동을 하면서 결혼과 출산, 주거 문제 등 직접적으로 구조적인 사회 모순과 충돌하는 세대이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또한 이 세대는 반(反)이민주의, 자국중심주의로 극우 정당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죠. 즉, 프랑스의 청년들은 중도보단 극좌와 극우 양극화 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깃발 하나로 시위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나
물론 젊은 계층의 양극화는 프랑스 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독일에서도 젊은 계층과 과거 동독 지역에서 극우 성향의 독일대안당(AfD)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반면 베를린에선 극좌 성향의 좌파당이 선거에 승리하는 등 뚜렷하게 양극화됐죠.
이탈리아와 스페인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극좌 또는 극우 돌풍이 커지는 등 유럽사회는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입니다.
일각에선 불법 이민자가 벌이는 소요 사태라고 합니다. 시위 현장에서 팔레스타인 깃발이 나부꼈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하죠.
글쎄요, 수 십 만명 모두가 불법 이민자일까요. 물론 시위대 일부에 친(親)팔레스타인·반(反)이스라엘 성향의 사람들이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 외신이나 소셜미디어(SNS)에서 찍힌 시위대의 사진이나 영상만 봐도 불법 이민자로 보이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가봐도 스테레오 타입의 백인 계열 프랑스인이 많이 보이죠.
대규모 시위에는 수 많은 이해관계자가 무조건 섞이게 됩니다. 특히 특정 집단이 아닌 계층 또는 전국민적인 시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몰리게 되죠.
단적으로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집회 때만해도 한 구석에선 유명한 극좌 정치인을 석방하라는 구호와 주한미군은 물러가라는 외침이 들려왔죠. 그 때 기자를 포함한 대다수의 시민들은 그 구호를 무시했습니다. 오히려 시위의 의미가 오염될 수 있다며 그들을 멀리하거나 쫓아내는 일도 있었죠.
반대로 최근 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 용지 부족사태로 발생했던 참정권 보장 집회에서 성조기가 나부낀다고 해서 미국이 시위의 배후에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번 프랑스 시위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회 구조 모순에서 시작된 건 같지만, 방법론이나 입장에서 의견 차가 발생하게 되죠.
◆정치에 이용되는 분노, 잊혀지는 청년들
구조적인 사회 문제는 명쾌한 ‘해답’은 없습니다. 만약 정치인이 “이번 시위는 OOO 때문”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면, 그 목적은 지지 결집을 위한 정치적인 목적이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뜬금없이 대서양 건너 프랑스 시위의 원인으로 불법 이민자를 지목했습니다.
언제부터 트럼프가 프랑스 사회에 관심이 많아졌는지 모르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프랑스가 아닌 미국을 향해 있습니다. 다가오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 내 불법 이민자의 문제를 부각시켜 자신과 공화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목적으로 해석되죠.
물론 프랑스와 유럽 사회에서 불법 이민자는 큰 문제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시위의 본질은 불안한 청년 세대의 분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지적하는 의도는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이죠.
다만 프랑스에서도 청년들의 분노는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마크롱 정부로부터 시위 폭력 사태의 배후로 지목된 멜랑숑의 LFI는 “청년들의 분노는 정부가 초래한 사회적 위기의 결과”라며 “폭력 사태가 확산된 것은 정부의 대응 실패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LFI는 이번 폭력 사태의 원인은 청년들의 분노를 무시하고 강경 대응으로 진압한 정부에 있다는 것으로 풀이되죠. 또한 프랑스 시위가 격해질수록 낮아지는 현 정부의 지지율을 대신해 LFI의 지지는 올라가는 모습입니다. 즉, 청년들의 분노를 이용할수록 젊은 세대의 지지율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하지만 프랑스 시위의 진정한 수혜자는 르펜의 극우 정당 RN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수를 차지하는 프랑스 기성 세대는 유례없는 과격한 폭력 사태를 보면서 르펜이 늘 경고해온 ‘무질서’를 체감하게 됐습니다.
르펜의 입장에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지지율이 올라가는 상황이 왔습니다. 실제로 미국 예측시장 플랫폼 칼시에 따르면 르펜의 2027년 프랑스 대선 승리 가능성은 최근 한 달 사이 39%에서 53%로 상승했죠.
안타까운 것은 프랑스 시위가 폭력적인 성향을 띨수록,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또한 시위가 정치적으로 이용될수록 청년들의 분노는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프랑스 뿐만 아니라 선진국 대부분에서 청년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성장 국면에 들어가면서 청년들의 삶은 기성세대보다 곤궁해 지는데, 복지 등 사회보장제도는 청년들에게 기대는 모순이 대표적인 불만이죠. 이번 시위의 본질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번 프랑스 시위가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청년들의 미래가 없는 사회는 결국 붕괴할 수 있다는 경고로 봐야 할 듯 싶습니다.

